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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분노와 자기방어적 분노의 경계― ‘옳음’이 언제 폭력이 되는가 ―

by aprilfield 2025. 10. 13.

분노하는 사회에서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오늘은 정의로운 분노와 자기방어적 분노의 경계
― ‘옳음’이 언제 폭력이 되는가 ―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정의로운 분노와 자기방어적 분노의 경계― ‘옳음’이 언제 폭력이 되는가 ―
정의로운 분노와 자기방어적 분노의 경계― ‘옳음’이 언제 폭력이 되는가 ―

 


1️⃣ 정의의 이름으로 화를 내는 사람들

 

누군가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분노한다.
부당한 차별, 부조리한 권력, 약자를 향한 폭력…
이런 장면 앞에서 느끼는 분노는 결코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가진 가장 고귀한 감정 중 하나다.

이 감정이 역사 속에서 얼마나 강력한 변화를 만들어왔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인권 운동, 여성 참정권, 민주화 운동 등은 모두 ‘정의로운 분노’에서 출발했다.
그 분노는 ‘타인을 향한 공격’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외침’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분노는 조금 다르다.
SNS 속 ‘정의감’은 때때로 도덕적 분노를 가장한 자기방어로 작동한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행위가
‘나의 도덕적 우월감’을 확인하는 수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즉, 우리는 정의를 말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보호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의 분노는 종종 ‘누구를 위해’가 아니라 ‘나를 위해’ 표출된다.
이런 분노는 사회적 변화를 만드는 대신, 또 다른 분열과 피로를 낳는다.

 

 

2️⃣ 분노의 경계가 흐려지는 이유

 

왜 우리는 정의로운 분노와 자기방어적 분노를 구분하기 어려울까?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감정의 즉시성 때문이다.
SNS와 실시간 미디어 환경은 숙고할 시간을 빼앗는다.
어떤 사건이 터지면 ‘즉시 입장’을 요구받는다.
충분히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도 전에 분노를 표명해야 ‘양심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때의 분노는 타인을 위한 정의라기보다,
‘도덕적 침묵자’로 비춰지지 않기 위한 자기방어적 반응이다.

둘째, 분노의 대상이 너무 모호하다.
우리가 화내는 대상은 실제 개인이 아니라 ‘상징’인 경우가 많다.
정치인, 연예인, 특정 집단, 혹은 추상적인 “나쁜 사람들”.
그러다 보니, 분노는 구체적인 해결책 없이 감정적 배설로 끝나버린다.
이런 분노는 문제를 고치는 대신, 분열의 벽만 더 높인다.

셋째, 분노가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어떤 문제에 ‘화낼 줄 아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성숙한 사람처럼 여겨진다.
그 결과, 분노는 자신의 ‘도덕적 자격’을 증명하는 방식이 된다.
“나는 이런 일에 분노할 만큼 올바른 사람이다.”
이 말 속에는 이미 ‘도덕적 자기확신’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
“자신이 선하다고 확신하는 순간, 인간은 위험해진다.”
그 확신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닫아버리기 때문이다.

 

 

3️⃣ 진짜 정의로운 분노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진정한 정의로운 분노는 어떤 감정일까?
그것은 단순히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감정이 아니다.
정의로운 분노는 타인의 고통을 내 일처럼 느끼는 감정이다.
즉, 공감에서 비롯된 분노다.

공감 없는 분노는 결국 폭력으로 흐른다.
반면, 공감이 있는 분노는 대화와 변화를 이끈다.
이 두 가지는 겉으로 비슷해 보이지만, 그 뿌리가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어, 사회적 불평등에 분노하는 사람과
특정 계층을 비난하는 사람은 겉보기엔 같은 감정을 표현한다.
하지만 전자는 구조를 바꾸려 하고,
후자는 ‘나보다 나쁜 누군가’를 찾아 안도한다.
이 차이가 바로 정의로운 분노와 자기방어적 분노의 경계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분노는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화내야 하는가를 아는 것이 덕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분노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절한 분노’야말로 인간의 도덕적 성숙을 보여준다고 보았다.
즉, 정의로운 분노란 ‘이성을 잃지 않는 분노’이며,
‘변화를 위한 분노’이지 ‘정당화된 감정 폭발’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하지 말라’가 아니라
‘분노를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이다.
그 능력은 감정의 속도를 늦추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상상력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분노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그 분노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정의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인간은 잔혹해질 수 있다.

‘정의로운 분노’는 결국 사랑에서 출발하는 감정이어야 한다.
타인을 바꾸려는 욕망이 아니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분노 말이다.

반면, ‘자기방어적 분노’는 타인을 공격함으로써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려는 감정이다.
그 분노는 일시적 쾌감을 주지만,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진정한 분노는 폭발이 아니라 깊은 울림이다.
그것은 조용히 세상을 흔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우리가 다시 ‘느린 분노’를 회복한다면,
그때야말로 분노는 인간다운 도덕의 증거가 될 것이다.